게임기획자가 되고 싶어? (10) 신입 기획자의 첫회사 고르기 (하편) by storm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신입 게임 기획자가 입사할 첫 회사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더 알아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게임 기획자로서 성장과 경력 관리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도록 한다. (지난번 포스팅 보기: http://sstorm.egloos.com/5204898)


조언3: 너무 큰 개발사(팀)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상식적으로는, 작은 회사보다 자본력이 탄탄하고 규모가 큰 개발사에 입사하면 무조건 좋아 보인다. 물론 이런 회사라면 월급이 밀리거나 개발비가 부족해서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개발팀의 규모가 클 수록 기획팀 인원도 그만큼 인원이 많을 것이고, 그래서 업무가 완전히 분업화 되어 타 분야의 업무를 접해볼 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점이다. 초기 경력을 이런 식으로 쌓으면 기획자로서 성장하는데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면접관으로서 면접을 본 어떤 5년차 기획자는 신입부터 5년차가 될 때까지 오로지 데이터 베이스와 루아 스크립트 입력만 다룬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5년차라고는 하지만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한정적이었고 기획 파트내에서 다른 업무 분야의 비중있는 업무를 맡기기에는 다소 부담이 있었다. 그렇다고 5년차인 기획자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고 해서 말단 업무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또 다른 어떤 기획자는 4년차 정도 됐었는데 오로지 MMORPG 퀘스트 작업 밖에는 맡아보지 못했다. 그것도 퀘스트 툴이 잘 만들어진 개발팀이어서 퀘스트 작업이라고 해봐야 그냥 NPC 대사와 퀘스트 내용 입력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일만 4~5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메인 시스템 기획이나 기획팀장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을까?

그런데 신입 기획자가 첫 회사로 지나치게 큰 개발팀에 들어가면 저런 상황이 될 확률이 높다. 만약 프로젝트 초기에 입사했는데, 그 프로젝트가 좀 지연되어 4~5년 걸리는 동안 특정한 한 가지 업무만 수행한다면 바로 저렇게 되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상황은 늦깍이로 신입 기획자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30대 중반, 후반인데도 메인급, 팀장급 직무를 맡기가 곤란한 제한적인 업무 능력만 보유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성장하기 좋은 개발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 큰 회사보다는 월급이 잘 나오고 프로젝트가 중단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적당히 작은 팀이 좋다. 이런 규모의 팀이라면 단 한가지 일만 하는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

신입이 너무 큰 개발사에 입사할 때 또 하나의 문제점은 급여와 복지 등의 문제다. 규모가 큰 회사일 수록 수익이 많고 그에 따라 직원들의 급여와 복지 수준도 높다. 회사마다 좀 다르겠지만 급여는 업계 평균보다 대략 15~20% 정도 높다고 보면 된다. 이런건 무조건 좋은게 아니냐고? 그 회사에 다닐때야 좋겠지만, 문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옮길 때가 문제다.

신입으로 입사해서 2~3년 경력 쌓고 다른 마이너한 회사로 옮기려고 하면 원래 회사에서 신입 때 받는 급여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연봉으로 치면 최소한 수백만원은 손해를 본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입의 문제 때문에 회사를 못 옮기고 눌러 앉는다. 이런 일은 10년차 이상 되는 경력자들에게도 흔하게 벌어지는데, 회사도 싫고, 맡은 일도 싫고, 비전도 안보이는데 옮기자니 연봉이 높아서 마땅히 받아줄 회사도 없고 옮기자니 수입이 많이 줄기 때문에 그냥 '몸빵'으로 버티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짬밥 쯤 되면 업계인들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는 하소연이다)



조언4: 내 적성이나 취향에 맞는 업무가 주어지는가?

기획 지망생들은 신입일 때 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만 주시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사하겠습니다. 굽신굽신~' 하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열정에 불타올라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그 태도 자체는 좋다. 하지만 당장 취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한 것과 같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받아만 준다고 아무데나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 하지 않은 방법이다.

만약 여러분이 MMORPG의 컨텐츠 기획을 하고 싶고 그쪽으로 적성이 맞는다면 가능한 그런 업무가 주어지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못난 나라도' 받아준다고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도 따지지 않고 일단 들어가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개발팀에서 신입 기획자를 채용하는 시기는 CBT나 OBT 등을 목전에 두고 컨텐츠를 대량 생산해야 하는 '초 빡센' 타이밍이다. 심한 경우는 목요일 1차 면접, 금요일 임원 면접, 토요일 첫 출근, 일요일 첫 야근 크리가 터질 수도 있다.(이것은 내 제자가 겪은 실화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이 맡은 업무가 적성이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업무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여러분 스스로도 쉽게 지쳐버린다. 이러다가 얼마 안가 포기하고 나가 떨어지면, 다시 신입으로서 채용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업계에서의 평판도 떨어질 수 있다. (이 바닥은 매우 좁아서 MSN이나 네이트온으로 한 다리만 건너면 대한민국의 모든 개발자와 연결될 수 있다)

여러분이 아예 신입일 때는 여러분에 대한 평가가 오로지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통해서만 이뤄지지만, 업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는 같이 일해본 사람의 입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늘 지인들로부터 입사 지원자에 대한 평가를 요청 받는다.(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는 찰나에도 한 서버 프로그래머에 대한 신원조회 의뢰(!)가 들어왔다...)

그러니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업무가 주어지는 곳을 택하는 것이 조금 늦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 여러분에게 하루에 100개씩의 퀘스트를 만들고 300명의 NPC와 몬스터 이름을 네이밍 하는 업무가 주어졌는데 그 업무가 적성과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그 일이 재미있을 리도 없고 열심히 할 리도 없으며, 잘 해낼 리는 더욱 없다. 그리고 이러한 나쁜 결과는 여러분이 그 회사를 나와서 다른 개발사로 이직하려 할 때마다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결론:

  1. 월급이 잘 나올만한 회사인가?
    ▶ 어쨌든 직업으로서 선택하는 것이다

  2. 프로젝트를 완료할 만한 개발사인가?
    ▶ 게임이 서비스까지 갈 수 있는가?

  3. 너무 큰 개발사(팀)은 아닌가?
    ▶ 지나치게 제한된 업무만 주어져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4. 나에게 주어지는 일이 내 적성이나 취향에 맞는가?
    ▶ 안 맞는 일을 억지로 맡으면 경력에 오점이 생길 수 있다
를 따져보고 첫 회사를 고르시기 바랍니다.


핑백

덧글

  • ◆THE쿠마◆ 2010/03/15 14:47 # 답글

    많은 정보가 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케인 2010/03/15 14:51 # 답글

    좋은 글이네요. 개인적인 생각은, 작은 회사일수록 이것 저것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정말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자신이 그 파트를 맡았을 때 100%의 역량을 낼 수 있는 파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획(전 디자인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만) 파트도 따져보면 여러가지가 있으니까요. 물론 정작 입사하게 되면 다른일을 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 STREETDJ 2010/03/15 15:27 # 답글

    그놈의 한다리가 참 괴롭죠 [...]
    덕분에 언제나 약자인 구직자...
  • 올로레 2010/03/15 17:01 # 답글

    오늘 처음봤는데 좋은 정보가 되는 글 같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 개발(프로그래밍)쪽에서 기획자로 올라가려는 학생인데
    이런 경우에는 경력이나 그런게 어떻게 되나요...
  • storm 2010/03/15 17:21 #

    프로그래밍 경험이 있으면 시스템 기획을 할 때 좋은 점이 많기 때문에 경력 인정은 거의 해줄 것으로 봅니다.
  • bluetono 2010/03/15 19:59 # 삭제 답글

    빅N사들을 제외하고 게임은 몇개 내지 않았거나 아직 안낸 꽤 큰 회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제가 아는 것으론 블루홀이나,,XL같은..) 그런 회사들은 어떠한가요??
  • storm 2010/03/15 21:50 #

    회사 내부 사정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외부에 드러난 스펙만을 볼 때에는 입사하기에 좋은 회사라 생각합니다.
  • 마이즈 2010/03/16 00:01 # 답글

    조언3이 특히 중요한 부분인데.. 사실 신입 입장에서는 저런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가 않지요 ㅠ.ㅠ
  • storm 2010/03/16 00:08 #

    신입 입장에서는 큰 회사에서 입사만 시켜줘도 사실 굽신굽신일 수 밖에 없는지라... 뉴_뉴
  • 앤써니 2010/03/16 02:34 # 답글

    개인적으론 조언4와 같이 때문에 피해를 좀 봤습니다.
    저같은 경우엔 그래픽지망이지만 졸업하고나서 하도 취직이 안되자 한 외주사무실에서 작업하게 되었다는 3D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혼자서 다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깐깐한 대표가 맡긴거라 벌써 한달하고 보름은 넘었는데 중도금도 못받아서 현재 제 월급도 계속 밀리는 상황이...ㅠㅠ
  • storm 2010/03/16 09:10 #

    조언4 + 조언1의 경우인가요??? ㅜ.ㅜ
  • 觀鷄者 2010/03/16 10:38 # 답글

    조언 3을 읽다가 넋두리를 해봅니다...

    스스로의 능력이 모자라다고 느낀 만큼 그걸 현업의 이력으로 메꿔보겠다고 일부러 작은 회사에 투신해서 이런저런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꽤 큰 회사와 같이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력서를 보신 면접관께서 그러시더군요.
    '전문성이 부족해보입니다.'
    그럭저럭 일은 잘 풀렸지만, 그 분의 평가때문에 한동안 미친 놈처럼 돌아다닌 기억이 떠오르네요.
  • 2010/03/24 00: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torm 2010/03/24 00:30 #

    큰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수학 공부를 잘 하시는 게 나중을 위해서 좋아요.
  • zerobi 2010/03/26 01:30 # 삭제 답글

    이번에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몇번이나 들르고는 이제서야 댓글을 다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스톰님 제자 2010/07/30 16:00 # 삭제 답글

    남일 같지가 않군요.(_ _)
  • storm 2010/08/02 09:46 #

    누구삼?
  • 림자 2011/02/16 01:05 # 삭제 답글

    현업 타고 왔어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지망생 2011/08/14 16:29 # 삭제 답글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나중에 게임회사에서 만나요!
  • 세이지준 2011/09/16 21:00 # 삭제 답글

    .... 왜 트위터 DM조차 안보내주는지 알겠네요.

    "한 다리로 모든 게 연결된다" -_-;;;;

    흐음 조언3도 고민중이네요
    N모 회사도 엄청 끌린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악재가 등장할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나 부모님들이 선호하고 다녀서 (= 그 대기업 타이틀때문에) 강요받을 확률이 매우 높고요
  • 세이지준 2011/09/16 21:01 # 삭제 답글

    그 외에 1~9번까지 잘 읽어봤네요 (흑흑흑흑)

    똑같은 말투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333
206
50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