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제공하는 6가지 도전 [4] 인내 도전 by storm

지난 3편에서는 게임이 제공하는 6가지 도전 가운데에서 세 번째인 솜씨 도전(Dexterity Challenge)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어서 네 번째로 인내 도전(EnduranceChallenge)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다.


인내 도전 Endurance Challenge

인내(endurance)는 원하지 않는 상황이나 훈련, 또는 행동 등을 긴 시간동안 지속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Endurance is the ability to continue with an unpleasant or difficult situation, experience, or activity over a long period of time.) 그래서 인내 도전은 가능한 빨리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간 도전(Time Challenge)과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시간 도전이 주어진 임무나 과제를 최대한 빨리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인내 도전은 어떤 위협이나 압박, 강제력 등으로부터 최대한 오래 살아남거나 특정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이러한 도전을 제시하는 게임의 대표적인 예로는 80년대 오락실 게임으로 유명한 방구차(원제 Rally X)와 테트리스, 팩맨(Pac Man) 등을 들 수 있다. - 테트리스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내 도전의 범주에 속한다.


인내 도전의 특징
인내 도전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른 도전과는 달리 플레이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는데 있다. 수동적(受動的 passive)이라는 말은 사전에서도 나와있듯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의 작용을 받아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인내 도전을 제시하는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수동적으로 만드는가?  대부분의 게임들에서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목표를 방해하는 적 또는 장애물을 공격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제거하거나 방해할 수 있지만 인내 도전이 주를 이루는 게임에서는 그런 공격 수단이 제공되지 않거나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제한한다.

앞서 예로 든 고전 게임들을 살펴보자. <방구차>에서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되는 차량은 아무런 공격 기능이 없다. 유일한 방어 수단은 차량의 후방으로 방구를 뀌어서 추격하는 적 차량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 뿐이다. 게다가 주인공 차량은 정지 기능도 없어서 항상 어디론가를 향해 쉼 없이 달리도록 강요당한다.

이는 <팩맨>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팩맨은 항상 쫓아오는 괴물들을 피해다녀야만 하며 <방구차>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의 아바타에게는 정지 기능이 없다. 팩맨이 적을 능동적으로 대할 수 있는 유일하게 상황은 일정시간 동안 무적으로 만드는 알약을 먹어서 그 효과가 유지될 때뿐이다. 그래서 이 두 게임은 플레이 시간의 대부분동안 수동적으로 적을 피해다녀야만 한다. <방구차>는 해당 스테이지에 배치된 모든 깃발을 획득해야만 스테이지가 클리어되고 <팩맨>은 스테이지의 모든 알을 먹어야만 클리어된다. 그리고 이런 게임들이 제시하는 과제는 플레이어가 위협으로부터 잘 피해다녀야만 해결할 수 있다.

같은 인내 도전이지만 <테트리스>의 경우는 매우 특이하다. 이 게임에서는 아예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플레이어는 단지 현재 화면에 주어진 단 한 개의 블록만을 조종할 수 있으며, 그 블록은 다른 블록이나 바닥에 닿아 정지하는 순간 장애물로 돌변한다. 이 장애물(쌓인 블록들)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블록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가로줄을 기준으로 빈 칸이 없게 만드는 것뿐이다. 게임의 외형은 완전히 다르지만 플레이어가 수동적이고 또 오래 버텨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앞선 두 게임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내 도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인내 도전을 제시하는 게임의 특징
- 플레이어가 적 또는 장애물을(위협요소) 대상으로 능동적인 행위를 할 수 없거나 행동이 제한적이다
- 플레이어가 적 또는 장애물을 상대로 가능한 오래 피해다니거나 오래 버티는 것을 주된 과제로 제시한다


인내 도전은 결과론적이다
RTS 게임의 싱글 미션이나 롤플레잉 게임의 퀘스트 가운데에는 일정한 제한 시간을 준 다음 그 시간까지 적의 침공을 막아내는 임무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미션은 인내 도전이라 할 수 있을까? 일단 겉으로만 보면 플레이어가 방어하는(버티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를 인내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류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인내 도전보다 먼저 체감하는 것은 시간 도전이다. 왜냐하면 침공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적이 침공하기 전에 가능한 빨리 방어준비를 완료하는 것이 주된 도전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시간 도전이 되려면 플레이어가 더 빨리 도전을 극복할수록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방어 미션'에서 플레이어가 침공해오는 적을 막아낼 준비를 빨리 하면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보상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플레이어가 빨리 방어 준비를 마칠수록(시간 도전을 더 잘 극복할수록) 유닛이나 자원 관리(자원관리 도전) 또는 전략적 판단(영리함/논리 도전)에 신경 쓸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바로 이것이 시간 도전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게다가 적군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차례 침공해온다면 앞선 침공을 빨리 막아내야만 다음 침공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더 많아지기도 하며 이 또한 시간 도전의 보상이다.

그렇다면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 게임으로 유명한 타워 디펜스류의 게임은 어떤 도전일까? 이것 또한 플레이어가 실제로 체감하는 주된 도전 과제는 시간 도전이다. 이런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는 적 유닛을 피해다닐 필요도 없고 수동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플레이어가 주로 하는 일은 가장 적절한 지점과 적절한 타워종류를 선택하는 것인데, 제거해야 할 유닛들이 계속 쏟아져 내려오기 때문에 어떤 타워를 어디에 건설할지를 최대한 빨리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게임을 진행하고 있을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얼마나 빨리 좋은 지점에 적당한 타워를 건설하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이다.

이 두가지 게임 유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내 도전은 결과론적이다. 즉 인내 도전은 플레이어가 그 게임에서 추구해야 하는 최종 목표 혹은 단위 레벨(스테이지나 라운드 따위)마다 추구해야할 목표로서만 존재할 뿐이며, 플레이하는 중에는 시간 도전이나 영리함/논리 도전과 같은 다른 도전들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앞서 인내 도전의 예로 든 고전 아케이드 게임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내 도전에 대한 또 다른 해석
인내 도전이 결과론적이라는 시각으로 게임을 분석해보면 의외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WoW의 옛날 레이드 보스들, 즉 화산 심장부나 검은 날개 둥지 등에 등장하는 대부분 네임드들은 플레이어들이 죽지 않고 계속 버티면 결국에는 정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보스들이 일정한 패턴을 반복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비록 기획자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론적으로는 인내 도전에 해당하는 셈이다. 인내 도전의 특징이 '결국 버티면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실력에 따라서 누가 먼저 잡느냐 늦게 잡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누구나 극복할 수 있는 도전이 되어 버리고만다. 방금 예로 든 WoW의 초기 레이드 던전 보스들도 탱커와 힐러만 죽지 않고 버티면 시간이 오래걸릴뿐 결국은 누구나 정복할 수 있었다.

블리자드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했기에, 그 이후의 레이드 던전에서는 시간 도전을 가미하는 보스들을 넣었다. 예를 들어 일정 시간내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제어할 수 없는 광포화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서 무조건 버틴다고 이길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든지, 혹은 갈수록 누적되는 디버프 등을 넣어 일정한 시간내에 쓰러뜨리지 못하면 결국 실패하도록 만든 것이 좋은 예이다. (WoW를 접은지 꽤 되어 정확한 보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인내 도전의 활용
그러면 이야기를 종합해보자. 우선, 결과론적으로는 인내 도전이라고 여겨졌던 게임들이 사실은 그 '인내'를 위해서 시간 도전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내 도전이 결국 누구나 버티면 극복할 수 있는 뻔한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일정 시간 동안 견뎌내도 승리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패배하거나 혹은 더 어려워지도록 시간 도전을 가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인내 도전은 시간 도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1. 인내 도전은 시간 도전과 적절히 연계되어야 한다.
    인내 도전을 내버려 두면 결국 누구나 다 극복할 수 있어 도전의 가치가 반감된다. 실력에 따라 적절히 승패가 갈리도록 시간 도전을 가미하는 것이 좋다. (물론 라이트 유저나 초보를 배려하기 위한 콘텐츠라면 예외이다)
  2. 인내 도전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다른 도전들은 무엇인가?
    플레이어가 어떤 것으로부터 견뎌내려면 분명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타워 디펜스에서는 자원 관리와 시간 도전이 있고, 팩맨과 테트리스 등에는 영리함/논리 도전과 시간 도전이 있다. 인내 도전을 이루는 하위 도전들이 잘 구성되어 있어야만 인내 도전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내 도전은 결과론적이다.

필자가 인내 도전에 대한 글을 뒤늦게 올리는 이유는 나 자신도 아직 인내 도전에 대해서는 명쾌한 결론을 다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포스팅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의 요청으로 개인적으로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이론이지만 일단 올려놓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해본다. 최근에 필자는 <메탈 기어 솔리드>와 같은 잠입 액션 게임도 (심리적인 측면에서) 인내 도전이 아닌가 하는 관점으로 나름대로 분석해보는 중이다. 어느 정도 결론을 얻으면 이 포스팅에 그대로 덧붙이도록 할 예정이다. 혹시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관심이 있는 분은 이 관점에서 관련 게임들을 분석해보고 의견을 주시기 바란다.




덧글

  • 안개바위 2009/11/17 08:01 # 삭제 답글

    좋은글 잘봤습니다^^
  • gump 2009/11/17 09:46 # 삭제 답글

    와.. 스톰님 멋쪄요 >.<; 저도 이렇게 멋진 글 쓰고 싶어요 -_-ㅋ
  • storm 2009/11/17 10:14 # 답글

    검프님 농구 블로그는 잘 되어 가나요? ㅎㅅㅎ
  • watereye99 2009/11/17 12:16 # 답글

    와우의 투기장 팀전을 보면 힐러의 경우 상대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힐러의 입장에서는 동료가 적들의 공격을 저지해줄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하고 공격자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다른 방해가 끼어들기 전에 상대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힐러의 동료 입장에서는 힐러가 버텨내는 시간 안에 다른 방해를 뿌리치고 힐러를 향한 공격을 멈춰야 합니다.

    이 것도 어찌보면 수 초에 불과한 극히 짧은 시간에 인내 도전이 제시되고 그 결과가 나오고, 다시 반복적으로 또 다른 인내 도전이 등장하여 게임 전체의 승패가 갈릴 때까지 이어지는 위와는 다른 형식의 인내 도전이 아닐까요? 인내라고 느끼는 것은 집중공격을 당하는 힐러 뿐이겠지만 공격자든 동료든 힐러의 인내도전 게임의 일부이며 그 결과에 지배받는 다는 점에서는 전체가 하나의 인내 게임을 구성하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스톰님이 분석하신 대상과는 성격이 다르기에 차이는 있겠지만 일치하는 부분이 어느정도는 있다고 생각되네요.
  • 마이즈 2009/11/17 14:11 # 삭제 답글

    예전에 많던 노가다형 MMORPG도 인내도전일지도.. ㅠ.ㅠ
    테트리스를 예로 들어주셨듯이 주로 퍼즐 게임에서 찾으면 쉬울 것 같네요 :)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에서의 마지막 공성 스테이지도 좋았던 것 같아요.

    문득, 생각나는건 모 스포츠 게임에서의 종목 중 마라톤...
    100m 달리기와 같이 연타하는 게임이었는데, 거의 2-3분간 연타를 해야해서 인내 도전의 범주에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메탈기어 솔리드는 잠입이지만 적을 공격할 수 있어서 조금 미묘하고..
    적을 피해다니는 것이 주가 되는 잠입액션이라면 인내도전이 될 듯요.
    메탈기어 솔리드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도전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의 게임성일지도 모르겠네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나머지 2개도 기대할게요-
  • ◆THE쿠마◆ 2009/11/17 15:50 # 답글

    참 이런 면에서 볼 때 테트리스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네요.
    비단 인내뿐만 아니라 스톰님이 이전에 언급하신 솜씨나 시간 도전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 storm 2009/11/17 23:00 # 답글

    watereye99 // 물론 예로 드신 사항도 인내 도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아직 인내 도전에 대해서는 이론이 확립되지 않아서 좀 더 분석을 해봐야겠지만요.
  • storm 2009/11/17 23:02 # 답글

    마이즈 // 요즘 게임은 복잡다단해서 여러 가지 도전이 얽히고 섥혀있기 때문에 하나의 게임을 통으로 묶어서 어떤 도전이다라고 말하긴 어렵죠. 게임내의 세세한 유저의 게임플레이를 여러 시각으로 분석해서 각각의 콘텐츠나 시스템들이 어떤 도전을 제공하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아 머리 아프네요
  • storm 2009/11/17 23:03 # 답글

    ◆THE쿠마◆ // 예전에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 게임 개발자들을 상대로 설문했을 때 '기존의 게임들 중 내가 저 게임을 만들었다면' 하는 설문에서 1등 먹은게 바로 테트리스였죠 :) 구현하기 쉬우면서도 엄청난 재미와 대중성을 확보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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