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이해 [2] 규칙: 게임세계를 규정하는 논리구조 by storm

게임에서 규칙은 한 마디로 말하면 게임 세계를 규정하는 논리 구조다. 즉 게임이 다루는 가상 세계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게임에 규칙이 필요한 이유는 게임이 다루는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와 다르고 또 특정 부분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게임 속 인물들은 현실 세계와는 달리 나이를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잠을 자지 않거나 식사를 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게임 디자이너(기획자)가 게임의 규칙을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게임 세계에서는 이렇게 현실과는 다른 설정을 적용하는가?

만약 <수퍼 마리오>에서 마리오가 몇 시간마다 식사를 해야하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사실성(!)을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서 기획자들은 마리오가 먹을 음식들을 설정해야 하며 레벨 디자이너는 맵의 곳곳에 화장실을 배치해야 한다. 그러면 이왕 하는 김에 밸런싱 담당 기획자가 게임에 들어갈 음식들의 칼로리와 비타민 함량까지 조절해야 할까?  이건 한 마디로 미친짓이다.

왜 이게 미친짓일까? 게이머들은 '단지 게임을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는데 필요한 규칙만 있으면 그만이다. 앞서 <수퍼 마리오>의 예에서 음식이나 화장실 따위가 필요하지 않는 이유는, 그 게임의 재미가 마리오의 24시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2차원 공간에서 신나게 밟고 부수고 뛰어노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퍼 마리오>에는 그런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고 촉진하는데 필요한 규칙만 있으면 된다. 마리오도 사람이니까 밥도 먹고 똥도 싸야 한다고? 그런 기획을 내는 기획자가 있다면 기획서를 입에 쑤셔넣고 화장실 변기에 쳐박아버려라. 마리오를 등장시키는 <심즈 Sims>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게임의 규칙은 게임플레이를 의도한 바대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규칙은 최고가 아닌 최적을 추구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은 최고best가 아닌 최적optimized을 추구해야 한다. 물론 게임 개발 프로세스 전체가 최적을 추구해야 하지만 특히 규칙을 설정할 때 더욱 그렇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바꾸면 게임에 꼭 필요한 규칙, 게임의 재미에 도움이 되는 규칙만을 받아들이고 또 게임에 맞게 그 규칙을 조절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규칙은 ‘필요한 만큼’만 필요하다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마법사가 물 속에서도 화염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 횃불을 들고 물속에 들어가도 꺼지지 않는다. 현실 세계의 자연 법칙으로 따진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왜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그런 자연 법칙을 무시했을까? 

만약 우리가 ‘정교한 사실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물 속에서는 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칙을 넣을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선, 그런 사실적인 요소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노력과 그것을 구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놓고 저울질을 해야 한다.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자. 물 속에서 불을 사용할 수 없게 설정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가?  ‘눈곱만큼의 사실성’을 부여하는 것 외에 별 다른 이득이 없다. 물론 게임의 컨셉이 정교한 사실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플레이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런식의 게임은 그리 흔하지 않다.

어떤 규칙이던 간에 대부분의 경우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구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냐 없냐’를 따지기에 앞서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가 아닌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결국 구현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효율성이 낮거나 게임의 재미에 별 다른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예로,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미네랄과 베스핀 가스라는 단 두 가지 자원만 등장한다. 이 게임에서는 이렇게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 모든 유닛을 생산하고 모든 건물을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사실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스타크래프트의 기획자는 이 두 가지 자원만을 규칙에 넣었는가?

자원의 종류가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플레이어가 관리해야 할 요소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게임을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만약 자원이 백 가지가 넘게 등장하고 유닛 하나를 생산하는데 수십 가지의 자원이 필요하다면 플레이어는 전투보다는 자원관리에 신경을 더 써야만 한다. 게임이 이런식이라면 실시간 전략 게임(RTS: Real-Time Strategy)이 아니라 경영시뮬레이션이 되고 말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게임의 규칙은 반드시 사실적일 필요도 없고 현실세계의 현상과 법칙을 모두 반영할 필요도 없다. 게임이 추구하고자 하는 재미를 유발하고 촉진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사실적이면 되고, 그런 요소들만 규칙에 집어넣으면 된다. 단 두 가지의 자원만으로 어떻게 세상 만물을 다 만들 수 있냐고 따지는 골치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냥 외면해라. 규칙은 꼭 필요한 만큼만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규칙의 최적화다. 그리고 게임 기획자에게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게임에 꼭 필요한 규칙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규칙은 곧 제약이다

개발자가 설정한 규칙은 참가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약이다. 앞서 1편에서도 말했듯이 게임의 참가자는 규정된 규칙fixed rules에 따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규칙이라는 단어의 의미 역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다.

만약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면 참가자들 중 누군가는 술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규칙이다. 보통은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무작위로 술래를 정하는데, 술래가 된 사람이 술래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제약, 그리고 술래가 아닌 사람은 술래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제약을 따르지 않으면 게임은 성립되지 않는다.

고스톱의 경우에는 참가자들이 서로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패를 볼 수 없게 하는 규칙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패를 들고 있는 지를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보의 제약을 받는다. 롤플레잉 게임도 마찬가지다. 캐릭터의 직업을 구분하고 직업별 장단점과 특색을 달리하는 것이 대표적인 규칙이다. 그래서 보통 전사는 접근전에 강한 대신 원거리 공격이나 마법을 잘 못쓰며, 마법사는 그 반대의 제약을 받는다.

이렇듯 게임 디자이너(기획자)가 어떤 규칙을 만들 때에는 그것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와 그런 제약이 게임플레이를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게임을 의도한 바대로 유지시키며 게임플레이, 즉 재미를 부각시키는 규칙이 좋은 규칙이다.

방금 전에 언급했던 고스톱을 다시 생각해보자. 고스톱에서는 왜 서로 들고 있는 패를 상대가 볼 수 없게 감추고 진행하는 규칙이 있는가? 게임기획 가이드 3편에서도 다룬 바 있듯이 고스톱은 '가능성과 예측'의 게임이다. 그래서 내가 들고 있는 패와 이미 획득한 패, 바닥에 깔려있는 패 등과 같이 드러난 정보를 분석하여 상대방이 감추고 있는 패를 추론하고, 어떤 패를 얻어서 어떻게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좋을지 그 가능성을 따져보고 승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들고 있는 패를 감춘다는 규칙 없이 서로 ‘다 까놓고 하면’ 고스톱이라는 게임은 그 고유의 재미를 잃는다. 물론 이는 포커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카드를 이용해서 즐기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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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제리 2009/04/05 23:40 # 답글

    모바일게임들이 사실성을 올린답시고 인벤토리 용량을 줄이거나[...] 직업을 변경하는데 창고에 처박힌 무기를 꺼내 장착하는[...] 만행을 저지르죠. 극사실성을 추구하느냐면~그런 게임은 또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비공정을 타고 돌아다니는 시나리오라서.

    아무튼 요새 모바일액알들 만드는 기획자들 보면 스톰님의 이 포스팅을 입에 쑤셔박고 싶어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storm 2009/04/05 23:42 # 답글

    제리// 요즘 모바일 게임을 안해서 잘 몰랐는데, 정말 그런 게임이 있군요...
  • fifia 2009/09/14 18:08 # 삭제 답글

    제리 // 에.. 아마 그런게임들은 인벤토리 증가 아이템을 유료로 팔아치울겁니다.

    다운비용 3000원이라면 대충 천오백원정도에 가격이 잡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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