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자가 되고싶어? (5) - 아이디어와 기획의 차이 by storm

지난 4편에서는 지망생들이 교과서적인 이론과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번 편부터는 지망생 레벨에서 숙지해야 할 기획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한다.

보통 초보 기획자들이 작성한 기획서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문제점은 아이디어와 기획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꼭 게임 기획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디어와 기획의 근본적인 차이는 구체적인 실행(구현) 방법에 달려있다.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막연히 '~한다' 또는 '~를 넣는다(혹은 넣고 싶다)'라는 말만 있다면 그것은 기획이 아니라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이것이 기획이 되려면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방법을 명시해야 한다. (특히 시스템 기획을 할때에는 더욱 그래야만 한다)

아이디어와 기획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앤드류 롤링스와 어네스트 아담스가 집필하고 제우미디어가 출간한 <게임 기획 개론>이라는 책의 34p에 적절한 김대기 예시와 함께 잘 설명되어 있다.
아이디어 VS 디자인(기획) 결정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보자. - '바실리스크는 반드시 자신들의 알을 지켜야 한다.'

이 경우 디자인(기획)상의 결정은 이렇다. - '둥지 안에 알이 있다면 암놈은 둥지의 시야를 벗어나는 영역 바깥으로는 이동하지 않는다. 만약 적이 둥지 50미터 이내로 접근하면 바실리스크는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둥지로 돌아와 알을 지키려 든다. 암놈은 알에 대한 적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둥지에 머물며, 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거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둘의 차이가 이해 가는가? 디자인(기획) 문서 작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위 예시에서 '바실리스크는 반드시 자신들의 알을 지켜야 한다.'는 표현의 문제점은 '지킨다'는 행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식의 표현은 아이디어 노트나 초기 컨셉기획 단계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시스템 기획 단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이것이 온전한 기획이 되려면 단어와 문장의 의미가 명확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하며 무엇이 왜 어떻게 되는지 그 원인과 결과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사실 위 예시문의 아래쪽 문장 가운데에서 '둥지 안에 알이 있다면~주저하지 않는다'라는 문장도 시스템 기획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다. 이보다 더 적절한 시스템 기획서가 되려면 아직 남아 있는 약간의 불명확한 표현들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문장에서 어떤 표현들이 불명확한가? '알에 대한 적의 위협''목숨을 거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애매하다. 이런 표현들 역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말로 고쳐야야 한다. 게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MMORPG 게임이라고 가정하면, '알에 대한 위협'은 다음과 같은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1. 알이 공격을 받거나 해를 입히는 마법효과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경우
    (WoW로 치면 알이 전투상태인 경우)
  2. 알의 일정 범위 내에 적대적인 개체가 있는 경우
  3. 누군가가 알을 둥지에서 꺼낸 경우 (알이 둥지에서 벗어난 경우)
그러면 이번에는 '목숨을 거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를 바꾸어보자. 아래의 1~3항은 각각 바로 위의 1~3항의 이벤트가 발생한 경우에 대응되는 바실리스크의 행동패턴이다.
  1. 자신 또는 대상이 죽을때까지 알에게 가장 큰 어그로 수치를 가진 대상을 공격한다.
  2. 자신 또는 대상이 죽을때까지 알에 가장 먼저 접근한 대상을 공격한다
  3. 자신 또는 대상이 죽을때까지 알을 들고 있는 대상을 공격한다
여기서는 '목숨을 거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를 '자신 또는 대상이 죽을때까지'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물론 기획의 방향에 따라서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목숨을 거는 행동이라면 이정도가 무난할 것이다. 어쨌든 원래의 표현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참고로 좀 더 추가하자면, 만약 '바실리스크의 기본 AI가 자신의 HP가 20% 이하가 되면 10초 동안 랜덤한 방향으로 달아난다.' 와 같은 식으로 설정되어 있을 경우에는 알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 기존의 AI를 무시하고 '목숨을 거는 행동'을 할 것인지 행동패턴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규정해야 기획의도대로 게임 플레이가 이뤄질 수 있다.

자 그러면 '알에 대한 적의 위협''목숨을 거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방금 살펴본 바와 같이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바꾼 것만으로 이 기획서에 아무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좀 더 까탈스럽게 뜯어보면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맨 위에서 살펴보았던 예시 문장 중에서 '만약 적이 둥지 50미터 이내로 접근하면 바실리스크는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둥지로 돌아와 알을 지키려 든다' 부분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어떤 개체가 알을 위협하거나 바실리스크와 전투를 하고 있는 도중에 다른 개체가 둥지 50미터 이내로 접근한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위 예시 문장만을 놓고 보면 바실리스크가 이미 전투 중이거나 혹은 알에게 위협을 가하는 개체를 공격하기 위해 이동중일 때 다른 개체가 알에 접근하면 바실리스크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무조건 나중에 접근한 대상을 공격할 것이다.

물론 필자가 수정한 버전인 행동패턴 1~3번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 경우에는 누군가가 먼저 알을 위협하여 바실리스크와 전투에 돌입하면 그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플레이어나 NPC가 와서 알을 깨건 들고 튀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 물론 기획 의도 자체가 그렇다면 상관 없다. (참고로 개발 기간이나 여건 등의 문제로 이보다 더욱 세밀한 규칙을 설정하지 않고 이정도 수준에서 기획을 마무리 하고 구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보다 세밀하게 바실리스크의 행동을 설계하려 한다면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던지 아니면 적대적인 대상이 알이나 바실리스크에 가할 수 있는 모든 위협적인 행동을 수치화 하여 소위 말하는 '어그로' 방식으로 바실리스크의 행동패턴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번 편의 주제가 인공지능 설계가 아니므로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번 편에서는 아이디어와 기획의 차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론으로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뿐, 여러분들이 아이디어와 기획의 차이, 그리고 실제 구현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앞서 2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3의 맵 에디터, 또는 다른 게임에서 제공하는 에디터도 좋고, 간단한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도 괜찮다.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로 간단하게나마 기획서를 써보고, 그것을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으로 만들어보면 아이디어와 기획, 그리고 구현의 차이가 무엇인지 몸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기획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조건이다.

덧글

  • 마이즈 2009/01/09 13:53 # 답글

    오오 간만에 업뎃! 오늘도 좋은글 보고 갑니다. ^^
  • ◆THE쿠마◆ 2009/01/09 16:56 # 답글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모든 아이디어를 낼 때도 이러한 세심한 부분까지 생각해야 하니;;

    잘 보고 갑니다~
  • Seraph★ 2009/05/06 10:19 # 삭제 답글

    글 잘 읽고 가요!!! 좋은 글이예요^^
  • 김양 2009/07/29 18:58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보고 가요~ ^^
  • 아트리아 2011/04/11 09:18 # 삭제 답글

    여태까지 좀 자세하게 적었다곤느 생각했지만
    별로 구체적이지 않았군요..
    다시 보아도 아이디어 노트에 불과한 것같네요 ㅎ..
    좋은글이네요 잘읽고 갑니다.

    어려운 점이라고해야하나 그.. 시스템과 아이디어와 데이터를 어떻게 연결시켜야하는가라고해야하지요
  • storm 2011/04/12 21:34 #

    처음엔 다 아이디어 노트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가꾸고 다듬느냐에 달린 거죠.
  • 슭꼼 2013/04/04 18:52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바질리스크 열심히 읽다가 의문이 들어서 질문할게요.
    아이디어 - 바질리스크는 반드시 자신들의 알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기획 디자인으로 넘어갈때 이것저것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주셧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서 파고 들어 갈 부분이 있는것은
    어떤 문장이든 파고 들어가면 끝이 없는것은 맞지만,
    그 부분에 대해 기획을 하는 의도와 목표가 불분명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바질리스크가 알을 꼭 지켜야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같은
    6하원칙에 의거한 목표 설정을 하고, 그에 맞춰서 기획을 다듬어 가는게 맞다고 보는데요...
    목표없이 딱 아이디어 하나 적고, 이걸 기획으로 바꿔야 하니까 해야 할게 뭐뭐 있는지 나열해 보자 하는건, 너무 막연하고 기획자 본인한테도 어려울거 같아요...
    '바질리스크는 정해진 시간마다 알을 낳는다, 아니면 알이 시간마다 나타난다.(라그나로크 개미알'';) 그런데 알을 낳은후 바질리스크는 그냥 알을 버려두면 이상하다. 내가 생각하는 바질리스크는 모성애가 강하다. 그러므로 어떤일이 있더라도, 알을 우선시 하는 바질리스크를 표현해야 겠다.' 이런식의 전제와,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정해야, 아이디어를 프로그래밍적인 기획으로 잘 구현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아직 공부를 시작한 단계라 잘 모르지만, 궁금해서 적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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