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제공하는 6가지 도전 [2] 시간 도전 by storm

우리는 지난 1편에서 에서 소개한 '게임이 제공하는 6가지 도전'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책에서도 '6가지 도전이란 이런 것들이 있다' 정도로 표면적인 이론만 나와있을 뿐, 그 여섯가지 도전을 실제 게임 기획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또는 기존 게임에서 이 도전들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와 같은 실전적인 노하우는 들어있지 않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부터는 게임이 제공하는 6가지 도전들에 대해서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실제 기획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시간 도전 Time Challenge

플레이어가 임무를 완수하는데에 특정한 제한 시간이 주어져 가능한 빨리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목표인 도전 형식이다. 아주 고전적인 도전 가운데 하나이며 요즘 게임에서는 다른 도전들과 조합해서 제시된다. <너구리 Ponpoko> <페르시아 왕자>와 같은 고전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전 형식이다.

그러나 게임내에 카운트 다운 타이머가 들어있다고 해서 무조건 '시간 도전'이 의미있게 제공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도 일정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하는 시간 도전형 퀘스트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단지 제한 시간내에 완수만 하면 될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다. 즉 10분 안에 어떤 아이템을 다른 NPC에게 배달해야 하는 퀘스트라고 가정하면, 9분 50초만에 완수하든 4분 26초만에 완수하든, 30초만에 후딱 해치우든, 결과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진정한 의미의 시간 도전이라 하기 어렵다. 단지 약간의 긴장감 유발을 위해서 시간 도전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린다.


시간 도전의 특징과 장점
진정한 의미의 시간 도전은 시간 요소가 플레이어에게 '의미 있는 의사 선택'을 제공해야 한다. 즉 시간 제약이 없을 때와 비교했을 때 무언가 다른 도전이 추가로 제공되거나, 혹은 이미 제공되고 있는 다른 도전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거나, 적어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플레이 방식을 바꿀 동기라도 유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시간 도전을 중시하는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목표를 빨리 달성할 수록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보상을 주는 방법으로 플레이어를 유혹한다. 그리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단지 제한 시간내에 목표를 달성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빨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또 다른 게임 플레이(우리 말로 하면 게임성과 같은 말)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전 명작 아케이드 게임인 <너구리>의 경우는 스테이지를 빨리 클리어 할 수록 더 많은 보너스 점수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단지 보너스 점수가 주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플레이 동기를 부여한다.

만약 <너구리>라는 게임에 카운트 다운 타이머와 그에 따른 보너스 점수 시스템이 없다면, 동일한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 사람끼리는 점수도 거의 같다. 즉 플레이어 간 실력 차이가 크지 않은 이상에는 누구나 비슷한 보상(점수)을 받을 것이고 몇 번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고 나면 더 이상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 해야 할 동기가 발생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스테이지를 빨리 클리어할 수록 더 많은 보너스 점수가 주어지기 때문에, 게임에 능숙해진 플레이어는 단지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다는 기존의 도전과 목표에 국한되지 않고, '더 빨리 클리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는 도전(논리 도전)과 그것을 수행하는 콘트롤에 도전(솜씨 도전)'하려 한다. 특히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의 전성기(오락실 전성기)에는 어떤 게임을 몇 판까지 클리어 해봤다든지, 최고 기록이 몇 점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매우 중요한 신분 표시 수단(!)이기도 했기에 이런 도전은 상당한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었다. (이걸 요즘으로 빗대면 '너 몇 넴드까지 잡아봤어?'정도가 될까나?) 즉 대부분의 게임에서 시간 도전은 그 게임이 제공하는 다른 도전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너구리>의 경우, 능숙해진 플레이어들은 더 높은 최고기록 점수 달성을 위해서 시간 도전에 임하게 되고, 그 도전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솜씨 도전과 기억/지식 도전에도 임하는 것이다.

게임 <너구리>에서 제공하는 도전들
- 시간 도전: 스테이지를 빨리 클리어할 수록 더 많은 보너스 점수를 받는다.
- 솜씨 도전: 너구리 아바타를 정확하게 콘트롤 해야 한다. (이동, 점프)
- 논리 도전: 아바타의 현위치와 적의 움직임 주변 지형과 사물의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 기억 도전: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려면 적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행동하기보다는 아예 적들이 움직이는 패턴과 타이밍을 기억하여, 마치 이미 설정된 매크로 명령을 수행하듯이 아바타를 콘트롤 해야 한다.-> 초고수의 경지에 오른 경우


다른 도전과 조합된 시간 도전
다른 도전들도 마찬가지지만 시간 도전은 혼자 독립적으로 제공되기 어렵다. 앞서 <너구리>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통은 솜씨 도전이나 논리 도전과 함께 제공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시간 도전 요소가 강할수록 논리 도전의 비중은 줄어들고 대신 솜씨 도전의 비중이 커지며, 시간 도전 요소가 약할수록 그 반대가 된다.

예를 들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략(RTS)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전투를 할지, 후퇴를 할지, 어떤 테크트리를 선택할지 등)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결정은 신속해야 하며, 그로 인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솜씨(콘트롤)로 커버해야만 한다. 시간 도전이 강하기 때문에 솜씨 도전의 비중이 높은 경우다.

반면에 코에이의 <삼국지>와 같이 전형적인 시뮬레이션 게임은 고전적인 턴 방식을 채택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결정을 내릴 때 충분히 심사숙고할 시간이 주어지며, 한 번 잘못내린 결정은 그 다음 결정을 또 다시 심사숙고해서 해결한다. 콘트롤? 이런 게임에서는 원하는 메뉴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정도의 콘트롤 능력만 있으면 아무 차이가 없다. 즉 솜씨 도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신 이런 게임은 논리 도전과 자원관리 도전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이론일뿐이다. 시간 도전이 '적당하게 플레이어를 '압박'하면 솜씨 도전의 비중도 크면서 논리 도전의 비중도 동시에 상승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게임 기획자들이 꿈꾸는 '황금비율과도 같은 밸런스'다. <스타크래프트>가 재미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어도 내 견해로는...

<스타크래프트>는 그리 많지 않은 종류의 건물과 유닛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선택지가 다양한 이유는 각각의 유닛들이 가진 파라미터들, 이를테면 공격력, 공격타입, 방어력, 방어타입, 이동속도, 생산비용 등과 같은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 도전 요소가 강한 실시간 진행이면서도(그것도 다른 RTS에 비해 템포가 빠르기까지 하다) 플레이어가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데 고려해야 할 논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논리 도전의 비중도 그다지 심하게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주의점: 시간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기억 도전의 함정
그렇다면 플레이어에게 시간 도전을 제공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없을까? 물론 있다. 시간 도전이 플레이어를 지나치게 압박하면 플레이어는 그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만을 추구하게 된다. 즉 앞서 <너구리>의 경우에서 언급했듯이, 최적화된 이동경로와 타이밍을 그대로 암기하여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이른바 '매크로 플레이'가 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게임이 이 지경에 이르면, 다른 도전은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최적화된 한 가지 방법에만 숙달되려고 하는 현상인, '시간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기억 도전의 함정'에 빠져버린다. (이건 내가 만든 용어이므로 처음 들어봤겠지만, 앞으로 널리 사용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이 함정은 정말 헤어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너구리>와 같은 단순한 고전 게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레이드 던전에서도 이런 함정에 빠지는 유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상위 공대(레이드 던전을 일반 유저들보다 훨씬 먼저 공략하는 하드코어 유저 공격대) 쯤 되면 남들보다 빨리 네임드를 잡고 던전을 정복하겠다는 '시간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 적을 가장 빨리 공략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법 하나만을 추구하려 한다. 그래서 각 공대원들의 장비나 특성도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최적화 된 특정 방식을 강요하고, 전투 방식이나 움직임 또한 마찬가지가 된다. 심지어는 UI 애드온도 지정한 것만 쓰도록 강요 받는다.

게임 플레이가 이 지경에 이르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이런 지경'을 겪어본 사람이다) 게임이 제공하는 다른 도전은 거의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시간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기억 도전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화된 하나의 방법을 외우듯이 숙지하고 있다가 수동적으로 수행할 뿐이라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하드코어 유저들이 게임을 접는 이유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게임이 제공하는 다양한 도전을 극복해 나가면서 재미를 얻는 게 아니라 저런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시간 도전이 가진 양면성이다. 잘 활용하면 다른 도전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모든 도전을 퇴색시켜 버리는 이중적 존재인 것이다.


시간 도전의 활용
게임에 시간 도전 요소를 넣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1. 시간 도전 때문에 논리 도전이나 기억/지식 도전과 같은 다른 도전이 불필요하게 침해되지는 않는가? 
    - 시간 도전이 지나치게 강하면 플레이어가 지각적 판단을 할 시간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논리, 기억, 지식에 기반한 도전들이 무의미해 질 우려가 크다.

  2. 시간 도전이 의미 있는 의사 결정을 유발하는가?
    - 단지 카운트 다운 타이머만 존재할 뿐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3. 시간 도전이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가?
    - 시간 도전이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플레이 동기를 유발하는가?

  4. 시간 도전이 게임 플레이를 단조롭게 만들지는 않는가?
    - 시간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기억 도전의 함정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어지는 3편에서는 솜씨 도전 Dexterity Challenge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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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hris 2008/12/09 09:21 # 삭제 답글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우리나라 MMOG 플레이어들은 자발적으로 시간 도전에 뛰어들고, 함정에 걸려들어 게임을 접고있죠. 그놈의 쌍아지가 뭐라고...
  • 새벽 2008/12/16 20:01 # 삭제 답글

    MMORPG에서 레벨업에 너무 치중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면 지겨워지는 것도 시간 도전의 양면성일까요? (레벨업을 빨리 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시간 도전에 해당?)

    다른 컨텐츠로 흥미를 유도할려면 유저가 레벨업보다 다른 컨텐츠가 더 가치있다고 느끼도록 (아니면 최소 동등한 가치가 있던지) 하는 방법이 올바른 것이겠죠?

  • storm 2008/12/16 22:45 # 답글

    레벨업을 빨리 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시간 도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이미 고렙이 된 본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캐를 키울 때는 본캐를 키웠을 때보다 더 빨리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 이미 경험해 본 기억과 지식에 의존하여 플레이를 진행하는 '기억/지식 도전'의 비중이 커집니다. 여기에 부캐 하나를 더 키우면 보다 더 심해지겠죠. WoW의 경우는 적어도 저렙지역은 각 종족별로 완전히 다르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게임에 비해 덜 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말씀하신대로 빠른 레벨업(시간 도전)에 대한 욕구를 상쇄할만한 다른 콘텐츠가 뒷받침 되어 준다면 시간 도전의 부작용이 많이 해소될 것입니다.
  • 업스 2010/11/04 10:27 # 삭제 답글

    WoW에서는 개발자가 제공하지 않은 시간 도전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는 하나의 던전을 최대한 빨리 클리어 해야 다른 짓(?)을 할 시간이 늘어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보면 MMORPG 자체가 기본적으로 시간 도전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시간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기억 도전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운'적인 요소를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겠네요. 사실 WoW가 아무리 숙달되어도 매크로같은 조작법이 불가능한 것이 공략에 확률적 요소가 꽤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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