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노가다 이론 - 유저의 눈에 안경을 씌워라! by 광사마스톰


이글은 2006년 4월 27일에 개인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노가다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게임의 장르 구분중 하나인 롤플레잉 게임은(RPG) 항상 노가다라는 단어를 달고 다닌다.

사실 노가다란 일본어 도카타 どかた에서 온 말로 한자로 쓰면 土方이다. 원뜻은 '토목 공사장의 막벌이 일꾼'을 지칭하는 말인데,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쓰이기 시작하더니 '도카다'가 '노가다'로 발음이 바뀐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옛날과 같이 '공사판의 막일'이란 뜻으로도 여전히 쓰이지만 그런 일이 연상될 정도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뜻하는 말로도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런 '노가다'란 단어가 RPG 게임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이유야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RPG, 즉 MMORPG에서 유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인 노가다를 피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10분 이상 플레이 해 본 모든 국산 MMORPG들은) 일단 시작하면 필드의 한 지점에서 캐릭터가 생성되어 아무런 동기부여나 감정이입도 없이 그저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필드에 내몰린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 일단 레벨부터 올리고 와라!'라는 것이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닥치고 사냥을 해도 재미있긴 하다.

이 단계에서도 재미가 없는 게임이라면...? 휴... 상상만해도 끔찍해서 말할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레벨이 올라가면 무엇이 있느냐... 그다지 바뀌는 게 없다.

물론 이런 '노가다' 문제는 비단 국산 게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게임성이 최고라는' WoW 역시 만렙 찍은 후에는 4대 인던 노가다, 레이드 노가다, 평판 노가다의 연속이다.



그렇다. 노가다란 아무리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노가다가 '필수'라거나 '꼭 필요한 요소'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노가다는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노가다는 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을까. 한 번 짚고 넘어가보자.

과거의 패키지 RPG 게임의 광고 문구를 기억하는가?

<<<방대한 필드와 퀘스트는 50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합니다>>>

대부분 이런식의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 패키지 RPG는 '오프닝'으로 시작해서 '엔딩'으로 끝나는 확실한 맺음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플레이 타임이란게 제시될 수 있었으며

개발 단계에서도 '플레이 타임'을 염두에 둔 구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화되면서 대부분의 게임들은 가능한 유저를 오래 붙잡아 두고 지속적으로 이용요금을 지불하도록 게임을 구성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노가다에도 방법론은 있다


그러면 노가다가 없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방법은 간단하다. 노가다, 즉 '단순 반복 작업'이 없는 게임을 만들면 됀다.

문제는 이 것이 실제 개발에서는 말처럼 쉬운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순 반복 사냥 대신 퀘스트를 구성하면 어느정도는 보완책이 돼지만 이 것도 사실 한계가 있다.

WoW가 수천개가 넘는 방대한 퀘스트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만큼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 게임이기도 하다.

블리자드는 개발중에 항상 출시 예정일을 'When it done (다 만들어지면 출시)'이라고 하는 개발사다.

지구상에 이렇게 여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개발사는 블리자드 하나 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블리자드식으로 개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WoW에서는 그런 양(量)적인 측면외에도 배울 점이 있다.

쉽게 말해서 퀘스트가 꼭 WoW처럼 수천개씩 되야만 스토리가 탄탄해지고 몰입감이 생기는가?

잘 짜여진 퀘스트가 많으면 당연히 좋지만 양적으로는 좀 적어도 구성을 잘하면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

중요한건 퀘스트의 양 따위가 아니다.

단 하나의 퀘스트, 단 한 줄의 배경 이야기 소개라도 유저에게 몰입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왜 단순 반복 노가다를 욕하던 게이머들이 WoW의 노가다는 '즐기는가'

이미 그들은 만렙을 찍을 때까지 경험해 본 수많은 퀘스트와 모험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들은 일종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계는 참 멋진 곳이야" 같은 느낌말이다.



이쯤되면 현역 개발자들은 보통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퀘스트 만들어도 안 읽잖아요. 그거 뭐하러 만들어요?'

그래, 물론 퀘스트가 좋다는 WoW조차도 모든 유저들이 퀘스트의 내용을 빠짐없이 읽어보고 모든 배경 이야기들을 다 달달 외우지는 않는다.

클로즈 베타때부터 2년이 넘도록 WoW를 즐기고 있는 나조차도 다 읽지 않고 넘기는 것들이 많으니 보통의 유저들은 더 심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유저들이 내용을 잘 읽고 안 읽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다 (혹은 있었다)'라는 사실은 퀘스트를 잘 읽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이 된다는 사실이고

이 '전달'이 반복되다 보면 게임이 제공하는 가상세계에 대한 '느낌'과 '감흥'이 생긴다는 점이다.

좀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가상)세계가 그럴듯해 보인다'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사람의 단점을 잘 보지 못하듯이

게임도 이런식으로 감성적인 몰입에 들어서면 '노가다'를 '노가다'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노가다'를 어느정도는 '기꺼이 감수'한다.



요즘 국산 게임들이 나올 때마다 해당 게임의 게시판에서 WoW와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꾸 WoW 얘기를 하면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WoW는 방대한 세계관과 퀘스트, 짜임새있고 어울리는 그래픽 등이 잘 융합해서 유저에게 '감성적으로 효과적인 접근'을 시도한 게임이다.

우리나라의 현 개발 환경상 '방대함'은 당장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감성적으로 효과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노가다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유저들은 '노가다가 없는 게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말을 흥미로운(?) 비유로 한 번 바꿔보자.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미녀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쨌거나' 자신이 원하는 미모에 못미치는 여자들과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래서 이런말도 있지 않은가 '제 눈에 안경'이라고...

왜 그럴까?

'감성적인 접근'이 성공하면 '부족한 '미모'는 감수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정도 선까지...)



당신은 노가다가 없으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가?

없다면 (설사 있다고 해도) 감성적인 접근부터 구상하라.

유저의 눈에 안경을 씌우는 것이 급선무이다.

덧글

  • 치유우 2015/08/03 11:17 # 삭제 답글

    댓글을 달지않을 수가 없는 글이군요...정말 잘 읽고 갑니다.
    저도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로서, 예비 기획자로서 '노가다 없는 게임'을 원해왔는데
    다시 한 번 동기부여가 된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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